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산문)
<대구 2.28민주운동,대한민국의 별이되다.>
대구새론초등학교 4학년 송진우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이유로, 아주 어릴 때부터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놀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세종로의 역사박물관과 현대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역사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일제강점기의 빛나는 항일전쟁과 해방전후의 혼란, 한국전쟁의 비극과 이후의 산업화, 민주화 과정은 나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부모님은 늘 ‘책읽기를 세상에서의 으뜸가치’ 로 말씀하셔서 다섯 살 무렵에는 혼자 책 읽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모르는 단어를 많이 물어봐야 했지만 말이다. 나의 독서편식은 백범일지를 세 번 읽고 더 심해졌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식민지시대의 독립열사들은 오직 조국의독립과 민족의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내가 남산자락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갔을 때는 “견이사의 견위수명”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는 뜻이다.

그렇게 나의 서울생활은 끝나고 두달 전 대구혁신도시로 오게 되었다. 대구를 먼 시골로 생각했던 나는 대구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특히 대구 근대역사관에서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된 것을 명확히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2.28민주운동을 설명하는 코너가 있었다. 4.19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학생운동이라는데...검색을 해 본 후에야 그 기념탑이 있다는 두류공원으로 갈 수 있었다. 이 탑은 1961년 기공식을 하고 이듬해 제막식을 했는데 당시 시민들과 학생들의 성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개의 흰탑은 남녀학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높이가 각각 10미터와 7미터에 이른다. 학생들의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화강암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탑의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분연히 교문들을 박차고 일제 뛰쳐나와 몰려드는 경찰의 빗발같은 철권과 발길에도 무릅쓰고,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 소리소리 외치며 온 거리를 메워 물었으니 이 날이 1960년 2월 28일이더라.”

이승만 독재정권의 불의와 부패에 맞서 청년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던 역사적 사건이 2.28민주운동이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형님들의 이 날의 함성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서 그 가치를 재평가받아 작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이 바로 대구의 2.28민주운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고 무척 놀라웠다. 대구라는 도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바라본 대구는 나에게는 큰 의미는 아니었지만, 두 달 째 새로운 친구들에게 듣던 진한 대구말이 전 보다 더 다정하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역사에서 4.19가 없었다면 그 이후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2.28민주운동의 그 위대한 함성이 4.19혁명의 첫 시작이었음을 이제는 대한민국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고등학생이 된다 해도 예전의 그 형님들처럼 오직 불의에 항거한다는 순수한 동기로 위험을 무릅쓴 시위에 나설 수 있을 지 망설여진다. 아마도 그 용기는 어렵게 독립한 가난한 나라의 청년만이 할 수 있는 제2의 독립운동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 번 주말에는 경북고등학교와 대구고, 경북대부설고등학교에도 가 볼 생각이다. 그 때 그 함성과 그 형님들을 생각해 보면서...지금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되셨지만 여전한 의로움으로 기록 될 그날을 기려보고 싶다.

서울보다 몇 주는 빨리 봄 꽃이 피는 이 곳은...봄의 찬란함보다 더 큰 불의에 항거한 거대한 함성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 대구다.

사랑해요,달구벌...사랑해요.(010-8871-9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