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산문)
할머니가 들려주는 2.28 이야기
새본리중학교 1학년 곽예빈
사랑하는 손녀 예빈에게
지난 주말 시내 나들이 가서 잠시 앉아 쉬었던 공원 있지? 분수도 있고 나무와 꽃들로 예쁘게 꾸며진 공원 말이야.
“2.28기념 중앙공원.”
“어, 6학년 때 학교에서 2.28에 대해 배운 적 있는데.” 예빈이가 그렇게 말했잖아. 이제 할머니가 겪은 2.28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해.
1960년, 할머니가 17살 경북여고 1학년 때 일이야. 그 때의 우리나라는 지금과는 엄청 달랐어. 아주 가난하고 어수선했지. 치욕스런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3년간의 전쟁을 겪은 상처투성이인 우리 국민은 아주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어. 그러한 만큼 대통령과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었어.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지. 십 수 년째 계속된 이승만 독재 정권과 집권당인 자유당의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국민들의 삶은 무너져 내렸단다. 그러던 중,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될 예정이었던 제 4대 대통령 선거 및 제 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모든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 했단다.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돌아가시고, 이승만 대통령 당선은 기정사실이 되었어. 하지만 86세 고령이었던 이승만 뒤를 이을 부통령으로 이기붕을 당선시켜야만 했던 자유당은, 야당의 장면 후보를 무서워했단다. 그래서 이목이 집중되었던 2.28 장면의 대구 수성 천변 유세를 방해하려고 했지.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고 대구의 8개 고등학교에 일요일임에도 등교 지시를 내렸어. 학생들은 그 부당함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 이에 항의 시위를 하기로 한 고등학생들은 전날 모여 결의문을 작성하고, 2.28 낮 12시 55분 경북고에서 결의문을 낭독 했단다. 결의문 낭독 후 학생들은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며 학교를 뛰쳐나왔단다.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담장을 넘어 시위대에 합류했으며, 우리 경북여고 친구들과 선배들은 수성 천변 유세장으로 가 시민들과 합세해 저녁 늦게까지 시위를 계속했어. 그러던 중 경찰에 쫓기게 되어 어느 골목으로 피했는데 마음씨 좋은 부부가 할머니와 내 친구를 숨겨줘서 잡혀가지는 않았단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콩닥 콩닥거려. 하지만, 이날 시위 현장에서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됐고 각 학교의 교사들도 모진 고초를 겪으셨어.
다행히 독재 정권에 움츠리고 있던 언론사들이 어린 고등학생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2.28 대구학생의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어.
대구의 2.28 학생시위 소식이 전해져 3.15 마산에서, 4.18 서울에서 그리고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단다. 그리하여 마침내 4.26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내고 4.27 대통령 사퇴서를 제출하고 물러났지. 그때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는지 제대로 표현을 못하겠구나. 처음 시위를 할 땐 사실 이런 엄청난 결과를 기대하진 않았단다.
우리 학생들이 힘을 모으고, 어른들이 힘을 보태고 해서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성난 파도처럼 나아가다 보니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더군. 정말 대단하지 않니?
2.28 대구학생시위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고, 4.19 혁명으로 이어져 우리나라를 바꾸게 만들었단다. 2.2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여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 공원도 그렇게 예쁘게 꾸며 놓았구나. 할머니도 그 현장에서 한몫을 했다는 게 너무나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그 시위 이후 할머니는 어떤 일에도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단다. 그 후로도 엄청난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너희들은 할머니 보다 훨씬 나은 나라에서 살 거야.
예빈아, 어떤 일이 생겨도 겁먹고 두려워하지 말고 잘 헤쳐 나가다 보면 길이 생긴단다. 기억해 두렴.
오랜만에 옛날 일들을 떠올리니 할머니의 오래된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구나.
다가오는 주말엔 2.28 기념공원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라.
2019. 5. 할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