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2.28 그날의 소리들
대구상원초등학교 6학년 서보임
오늘 학교에서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대구에서 일어났던 우리나라 최초의 학생 민주운동에 대해 공부를 했다.
만약! 내가 그 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3일전, 25일에 선생님께서는 오늘인 28일에 학교에 나오라고 하셨다. 그날은 야당 후보 장면 박사의 선거유세가 있던 날이었다. 또 27일 저녁에는 오늘의 시위를 위하여 각 학교 간부들이 모였다고 들었다.
수성 천변에서는 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가 계획되었다. 선거의 패배를 예감한 자유당 정부는 이성을 잃고 고교생인 어린 학생들이 유세장으로 몰릴 것을 우려한 우리학교를 비롯한 나머지 대구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고, 학교 당국은 온갖 핑계로 일요 등교를 강행했다. 학교에는 갑자기 임시시험을 친다고 했고, 단체 영화 관람이나 토끼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등교를 종용했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우리들은 불의에 몸을 떨었고, 그 날 학교에 모인 우리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이 같은 자유당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로 바꾸어 궐기했고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8일 12시에 부위원장 이대우가 선언문을 낭독하자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학교를 뛰쳐나왔다. 오늘 학교에 등교했던 약 800여명이나 되는 우리학교 학생들은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 하지마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계속해서 하였다. 하지만 자유당 정권은 경찰들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학생들은 자중하라, 학교로 돌아가라!” 라는 구호를 외치며 관제시위를 하였다. 우리는 그래도 우리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관치행정이 민주주의냐, 썩은 정치 갈아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들에 맞서서 투쟁하였다. 어떤 학생이 경찰과 싸우다가 끌려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물론 우리들은 무섭기도 우리의 학업자유, 민주주의를 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인구가 밀집했던 중앙동을 거쳐 경북도청과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당사, 경북지사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했다. 숱한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고통을 받았고 교사들도 모진 책임 추궁을 받았다.
시위가 끝날 때쯤이 되자 우리들은 서로를 안고서 울었다.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 나와 내 친구가 다 울고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은 거의 다 없었고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번 일을 겪고 우리나라 정부가 제발 마음을 바로 잡았으면 했고 다친 친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시절로 들어가 보니 그때의 대구 학생들이 오직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워준 것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진다. ‘그런 학생들이 있어서 4.19혁명도 일어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의 용기, 그 때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나도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