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학생들과 시민들의 최초의 운동
대구비봉초등학교 6학년 차원준
1학년에서 5학년 때까지는 2.28민주운동에 대해서 몰랐었다. 6학년 사회시간에 2.28에 내용을 조금 배웠다. 그러나 사회시간에 2.28민주운동에 대해 자세히 배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2.28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2.28민주운동이란 1960년 대구 경북 지역의 학생들이 주축이 돼 일어난 대한민국의 최초의 민주운동이다. 2.28민주운동은 우리나라의 마흔여덟 번째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우리와 달리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통령 까지 있었는데 3.15일에 치러질 ‘제 4대 대통령선거’와 ‘제 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에는 이승만을, 부통령에는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됐다.
이승만 정권은 학생, 공무원, 노동자, 시민 등이 장면의 유세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부당한 지시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대구의 8개 공립 고등학교(경북고, 경북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고, 대구공고, 대구여고, 대구상고)학생들이 유세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조기 중산고사, 임시수업 등을 핑계로 일요일에 학교에 나오라고했다. 학생들은 부당한 지시를 지적하고 철회를 요구했으나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1960년 2월 28일에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약 800여 명의 학생들이 교문을 나섰다. 이 사건이 바로 대구, 경북지역의 학생들이 중심이 돼 일어난 2.28민주운동이다.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센 시위에도 불구하고 3월 15일에는 곳곳에서 부정투표가 자행되었다. 지금의 우리가 뽑는 대통령 선거와는 다르게 3월 15일에 일어난 선거는 불평등한 선거였다. 그 당시 선거는 간접 선거로 이루어 졌다. 부정선거의 결과는 이승만 88.7%, 이기붕은 79%로 끝났다.
그러나 이승만은 국민의 듯대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대통령자리에서 물러났다.
2.28에 대해 내용을 조금 알았지만 이글을 쓰고 나니까 2.28에 대해서 전 보다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대통령은 문제인 대통령이다. 이런 평등한 대통령님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 같다. 다시는 2.28민주운동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