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뿌리를 알자
도원중학교 1학년 권강우
우리는 살아가며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결과 뿐 아니라 시작도 중요합니다. 시작이 있어야 결과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4·19혁명은 이승만 독재 정권을 하야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2·28민주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시작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일은 뿌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는 2·28민주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하기에는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2·28을 들어봤다는 대부분의 사람도 2·28 운동을 설명해보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제 친구는 2·28이 밀린 방학 숙제 하는 날이라 하더군요. 이런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작년 2월, 우리나라는 2·28민주운동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 또한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419를 치면 바로 4·19혁명 기념일이라는 검색결과가 나오는데 228을 검색하면 버스번호가 나옵니다. 2·28을 검색하면 관련 자료는 나오지만 2·28민주운동 기념일이라는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결과를 찾기 위해서는 2·28민주운동이라고 검색해야 합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상황을 보며 말만 국가 기념일이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8민주운동이 우리나라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5번째 민주화 운동이라고 합니다. 첫 시작이 2·28인데 5번째로 국가기념일 지정일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2·28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첫 시작이고, 뿌리입니다. 2·28민주 운동은 다른 민주화 운동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계단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2·28민주운동을 우리는 모릅니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입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 된 자유당의 이승만과는 반대로, 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장면이 여당의 이기붕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조급해진 여당은 장면이 대구로 내려오기로 약속된 2월 28일 일요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구 학생들의 등교를 강요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하나같이 교문을 지나 그들의 뜻을 알렸습니다. 자신들이 정치 도구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과 정의에 대한 믿음, 그들의 권리를 지키자는 생각만으로 무기를 든 어른에 맞선 것이죠. 여기저기서 총알소리가 난무하고, 연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몇몇 학생은 부상을 입었고, 몇몇 학생은 잡혀갔으며, 몇몇 학생은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 위대한 학생들을 기억하기는 커녕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인 2·28민주운동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이 역사적인 사건을 잘 기억하고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현재 대구 중구에 위치한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은 1호선과 3호선의 환승역 근처에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2·28민주 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28을 모르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말하는 것은 태조 이성계를 모르고 조선을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는 2·28민주 운동입니다. 2·28민주 운동이라는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2·28민주운동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부당한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정의를 부르짖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이제라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잊을 만큼 민주주의를 원했던 그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