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그들이 있기에
다사중학교 3학년 김민지
여러분은 2월 28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
이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나는 모르겠다. 대게 “독립운동인가요...?”, “잘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 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것도 10대 학생들이 주도한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내 주변, 아니 나만 봐도 그렇다. 나도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평생 동안 2.28 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나의 의견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살 수 있는 것이 누구 덕분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하염없이 의미 없는 시간만 흘러 보냈을 것이다.
59년 전 기껏해야 나보다 두세 살 많은 언니와 오빠들은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공포를 무릅쓰고 학교를 뛰쳐나와 자발적 저항운동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자유당의 장기집권과 이승만 독재정관의 횡포와 부패에는 감히 그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묵인하던 상황에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거대 권력과 맞선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 욕심으로 대구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가 있던 날 유세장으로 학생들이 모일 것을 우려해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일요 등교를 지시하였다. 어떤 학교는 토끼사냥을, 또 어떤 학교는 단체 영화 관람을...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명분을 내세워 이승만 정권은 학생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희생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상고, 대구농고, 대구공고, 대구여고의 학생들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야만과 폭압에 벗어나고자 했다.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이대우의 결의문 낭독을 시작으로 학생들의 시위는 시작되었다.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은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유당정권의 악행을 규탄하고 독재에 항거하였다.
자발적이고 조직적이며 민주적인 학생들의 강력한 의사표시는 그동안 자유당 정권의 불법과 부정에 눈감았던 언론을 움직이게 했고, 마침내 2.28학생의거는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는 3.15마산의거, 4.19혁명, 4.26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지게 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2.28민주화운동은 학생들이 스스로 민주적 의사를 표시한 최초의 사건이고, 세계혁명사의 유일무이한 저항운동이다. 이는 3.15의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에 이어 민주화 운동으로는 5번째로 국가기념일이 된 이유가 된다.
나는 59년 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고등학생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임에도 오직 조국의 미래를 위해 두려움에 맞섰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희생을 스스로 감내하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2.28민주화운동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였는데 공부를 할 때마다 ‘만일 앞으로의 미래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벌어진다면 그때는 용기를 내어 세상의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 속에 나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고 시대정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의 불의에 용기 있게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저항운동에는 역사적 의미와 숭고한 정신이 내포돼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부터 용기 있는 사람, 두려움을 극복하고 바른길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역사를 다시 보기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