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그날의 온기
공산중학교 3학년 박소윤
글을 쓰기 전에 2·28 민주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2·28 민주 운동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이 없었다. 내가 아는 2·28 민주 운동은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이승만 독재 정권을 막기 위해 대구에서 일어난 민주 운동”
글을 쓰기 위해 자세히 찾아보면서 나는 부끄러운 감정밖에 느낄 수 없었다. 평소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나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이 생각을 그만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2·28 민주 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2·28 민주 운동은 내가 한 문장으로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운동의 근거지인 대구에서 살고 있음에도 상당히 무관심했다. 지난날에 나에 대해 잠시나마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 운동은 민주당 유세에 청중이 모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시작이었다. 자유당 정권에 가장 먼저 저항한 게 고등학생들이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고등학생들이 당당히 맞섰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는 “내가 감히 뭘 어떻게...”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묻어둘 모습이 뻔히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참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부정과 부패로 가득했던 상황을 깨기 위해 교문에서 뛰쳐나와 민주 운동을 진행한 것은 어지간히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 일이 있기 전 경북고등학교 학생부위원장 이대우 등이 전날 작성한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이 결의문이 당시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학교를 뛰쳐나가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하는데 내 가슴에도 역시 불을 질렀다.
이 결의문을 읽으면 “나에게 무슨 일이 있건 무조건 끝까지 맞서 싸우자” 라는 다짐을 여러 번 되새김질 하게 된다.
시위현장에서 약 220명의 학생이 체포 당하게 되는데 시위현장에서의 꿋꿋한 민주 정신을 엿보는 것만 같았다. 2·28 민족 운동이 있었기에 4·19 혁명도 있을 수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대구는 그날의 그 횃불처럼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그 횃불의 온기가 대구 전체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