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2.28 선배 제현께
대구고등학교 2학년 최준영
저는 대구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준영입니다.
봄이 기지개를 펴고 겨울을 조금 몰아내어 훈훈한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움츠려 정적이던 것들이 하나둘 자신의 색깔을 내어 보이며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 감히 부족한 글솜씨로 선배 제현들을 뵙고자 하는 것은 얼마 전 제가 얻은 깨달음을 보이고픈 마음입니다. 특히, 올해로 59주기를 맞은 선배 제현들의 위대한 움직임이 그 동기가 된 바 알현의 마음은 한층 더 고양되었습니다. 제 필력이 그것의 숭고한 가치를 담기에 매우 빈약하나, 그 기저의 진실된 마음을 알아주십사 편지를 올립니다.
저희 교정의 가장 양지바르고 높은 곳엔 기념탑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검은 바닥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언뜻 무궁화의 형상을 한 다섯 개의 화강암 기둥, 그리고 두 개의 기념비. 저는 그것을 “2.28 기념탑” 정도로 부르며 무심하게 1년 동안 교정을 누벼왔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내력을 담고 있음을 피상적으로나마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알고자 했습니다.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급식실로 가는 길에, 하교하는 길에 숱하게 지나쳐왔던 그것에 서린 이야기를 저는 매우 부끄럽지만 업신여겼었습니다. 어차피 지금 제가 밟고 섰는 이 나라는 민주주의를 국가의 정치체제로써 받아들이고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으니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는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저를 맞추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경험한 후 모든 것이 “나”로 수렴된 맹목적인 경향성을 지니기 시작했던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한 날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제 방의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어른이라 하기에는 미숙하고 아이라고 하기에는 좀 성숙한 감이 없지 않은 참 모호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눈을 보았습니다. 자신만을 향하고 있는 눈빛, 때로는 멍청한 눈빛으로 무엇에 홀린 듯했습니다. 저는 한순간 민망해져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그를 마주했습니다. 그의 손은 텅 빈 주머니를 헤매고, 입은 굳게 닫혔고, 발은 어디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청히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때 저는 교정의 2.28 기념탑을 떠올렸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당시 선배님들의 눈빛은 그곳에 선명하고 생생한 것으로 저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2.28에 대하여 공부해 보았습니다.
1960년대, 비민주적인 개헌을 통하여 장기 집권의 야욕을 드러낸 자유당 정권 시절, 거리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민중의 자유를 옥죄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4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은 마음 한편에 변화의 소망을 조금 숨겨 두었을 것입니다. 야당 후보였던 장면을 엄청난 지지로 부통령에 선출시킨 전례가 있던 대구의 수성천변에 2월 28일 그의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학생들의 유세 참석을 막기 위하여 대구 8개 공립 고등학교에 대한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당국의 불온하고 부정한 조치의 부당함에 항의하던 당시 대구 고교의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향했습니다. 학생들의 자그만 움직임이 상류의 계곡물이 휘몰아쳐 하류에 이르러는 거대한 강줄기를 만들어내듯 저항의 횃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전국 각지에 퍼져 3.15 마산의거,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열망으로 국토를 물들였습니다. 그제서야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현대적 민주주의 체계의 초석이 2.28 민주화 운동에서 비롯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배 제현의 내력을 공부하다가 마주한 흑백의 이미지들 속 당신의 눈과 손과 발은 하나같이 정의감에 입각한 참다운 이성의 당당함이 만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위보다 더 가치 있고 신성한 것의 존재를 인지하고 불의를 경계하여 목숨을 다 바쳐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라 외쳤던 결의에 찬 함성을 저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거울을 봤습니다. 차마 민망하고 부끄러워 그곳의 한 남자를 똑바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얼마나 뜨거운 것으로, 밝게 빛나는 것으로 존재했는지”, “나와 우리의 권리의 신성함을 생각했는지”, “불의를 경계하며 투쟁하거나 차마 그럴 그릇이 못되어 그 자리에서 비통의 눈물을 흘릴 알량한 정의감을 지니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부끄러워하는 일로 저는 오늘도 내일도 거울 앞에서 그 남자와 마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에는 오늘의 불쾌함보다 덜 불쾌한 것으로 만나고자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서로 웃을 수 있는 유쾌한 만남이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오로지 “나”로 점철된 맹목적인 경향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존엄을 인지하고 자신의 각자 지닌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마땅히 지키고 성숙한 민주시민의 일원으로서 희망찬 내일을 영위하였으면 합니다.

저는 이를 59주기를 맞은 2.28 학생민주화운동으로부터의 깨달음으로 삼아 선배 제현께 보입니다.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대구고 2학년 최준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