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선(산문)
자그마한 불씨
이유현
사람이든 생물이든, 물건이든 뭐든 역사가 존재하며 그 역사를 통해 후세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원래 코끼리는 상아가 있지만 요즘엔 상아를 가지고 있는 코끼리들이 밀렵이나 사냥을 당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을 지키려고 있는 상아를 가진 생물이 죽을 확률이 높아져, 요즘에 태어나는 코끼리들은 상아를 가지지 않고 태어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생물과 사물들은 변화를 거치며 더욱 발전된 삶을 산다. 반대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전은커녕 그 틀 안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변화한 예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국한되어 생각해봤을 때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가 될 수 있던 밑바탕은 '2.28 민주화운동'이었던 것 같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 정권의 부패, 언론장악, 인권탄압 등 각종 부정부패가 절정을 이뤘을 때였다. 대구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의 선거 연설회가 계획되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자유당은 다가올 선거에서 패배할 것임을 예상하고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여 학생들이 정치 참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고자 했지만, 정부의 뜻을 파악한 대구 시내의 학교의 학생들이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며 시내 한복판으로 나와 현재 정권의 부정부패를 규탄했다. 그래서 결국 이 작은 불씨는 약 2달 뒤 4.19 혁명의 큰 불로 번지게 된다.

2.28 운동의 가지고 있는 의미는 고작 4.19 혁명의 밑거름이었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독립적인 시위의 시발점이었다는 것도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어른들이 아닌 아직 고등학교를 재학 중이던 수많은 학생들이 집단을 이룬 것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당시 학생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당시 학생들은 당장은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눈앞에 부정부패를 그냥 넘기지 않고 민주화운동으로 번지게 했다. 이를 통해 서울과 대전에도 학생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4.19 혁명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학생 운동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사건 때문에 어쩌면 전에 있었던 광화문 시위도 가능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부당한 일을 겪으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다른 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2.28 학생 운동을 통해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그래서 지금의 국민 인권과 민주화를 이뤄냈고,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결국 우리 사회는 물론이며 나라가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이 생소해도 잊지 않고, 이 일로 인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행동들을 아무런 희생과 노력 없이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 수 있다고 항상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