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어린 나이에 펼친 용기
무안북중학교 3학년 이수빈
드디어 교과서의 일제강점기 단원이 모두 끝났다. 나는 역사 교과서를 팔랑거리게 한장한장 넘기며 지난 한달여 간의 역사 수업시간들을 회상했다. 일제의 통치를 받던 때를 배우던 나는 소단원 하나하나 설명을 들을 때마다 나를 어이없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보호라는 허물을 씌워 식량과 토지들을 탈취해갔던 일제의 행동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고 자신한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이 한 행동들을 생각하면 화가 날 정도였다.
나는 그 단원을 화내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게 된 것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했던 부당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열이 받쳐 과거로 돌아가 그 사람들의 정강이라도 한 번 차고 싶었다. 정강이를 차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비겁한 일 중 하나였다. 세게 차면 몇 초간은 움직일 수도 없고, 고로 자신을 찬 사람을 잡으러 뛸 수도 없다. 나는 그 행동이 그들의 행동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러고 싶었다.
이제 배울 단원들은 그렇게 짜증이 나거나 화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같은 민족이며 겨우겨우 일의 지배에서 벗어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니 모두 같은 마음을 같고 평화로운 미래를 펼쳐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내게 보여주는 사실은 달랐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꾸준히 일어난 다양한 국가의 내적 분열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가 된 사람들이 갈라서기 시작하는 걸 보는 나는 별로 달갑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그중에서 선생님이 강조하신 내용을 나는 조금 의아히 여겼다. 교과서에는 별로 큰 비중을 차치하고 있지 않은 것이어서였다. 나는 그냥 넘어갔으면 싶으면서도 선생님이 저렇게나 강조하고 가르치시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말씀을 흘려 듣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것은 대구의 2.28 시위였다. 우리 또래 나이의 학생들이 벌인 데모라고 하시며 목에 핏줄이 서도록 설명하시는 게 선생님의 감정이 실려있어 나는 그것을 결코 대충 들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그 시위를 얼마나 중히 생각하시는지 그 목소리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1960년 자유당은 야당 부통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겠다는 의도로 2월 28일 일요일에 등교하게 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을 준비할 기간이 짧아졌고, 휴양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나는 자유당이 학생들의 정치적 선택을 억압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이었으면 그 지시를 내린 사람이 감옥에 잡혀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학생들은 스스로가 정치적 이용물로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야당의 강연을 듣던 자유당의 강연을 듣던 자신이 원하는 강연을 듣는 것은 자유여야만 했다.
학생들은 이런 부당함을 느끼고 수차례 그 지시를 따르지 않기를 학교에 요구했다. 한 두번도 아닌 요구에 지친 학교장들은 시험을 취소하고 영화를 보자는 것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학생들은 그에 승복하지 않았고, 결국 데모까지 벌이게 되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정의라 배웠는데, 불합리한 현실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의견이었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나는 이 문구가 좋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었을 이대우 학생과 목숨을 걸고 데모를 벌였을 어린 학생들의 의지가 확고히 보이는 것 같아 좋아했다.
나는 내가 저 상황에 있었더라면 나도 저 시위에 참여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안전을 추구하는 나라면 아마 그 부당함을 알면서도 조용히 일요일에 등교해 시험을 보고 와 소심하게 집에서 실컷 욕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학생들의 데모는 확실히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서도 참여한 건 그저 불의에 맞서기 위함이었다는 게 나는 너무도 대단스러워 보였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민운동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 역시나 그 어린 학생들이 대견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후에 4.19 혁명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도.
나는 내가 어리다는 것에 얼마나 기대어 살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 그런 불의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내 나이 뒤에 숨지 않고 큰 용기를 내어 그것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