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미인들이 외친 나라
김해율하고등학교 3학년 양예리
우리나라의 정부 수립 이후 민주적 개혁을 위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자생적인 시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요한 점심시간 학교 복도를 걸으며 시위를 했던 그 미인들은 나보다도 한 해가 부족한 못다핀 18살이라는 아야기와, 이 일이 4.19혁명의 시발점이라는 이야기를 역사 선생님께 듣고 나는 조금 많이 놀랐다.
자정에는 조그만한 키보드에 미인들에 대한 생각들을 담아 꾹꾹 키보드를 눌렀다. ‘2.28 민주운동’. 그날의 어느 오후 같은 긴장감이 테이블 위에 쏟겨져 있는 듯 했다.
미인들은 자유당의 장기집권과 독재 정권의 횡포, 그리고 부패로 1960년 2월 28일 횃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친 그 미인들은 열여덟이였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였으며 또 누군가의 형제이고 자매였다. 그들은 어렸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형제들의, 자매들의 미래를 생각했다. 말렸을 그들의 부모와 그런 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며 뿌리치고 거리로 나왔을 그들과 그런 그들을 따라 끝내 함께 거리로 나왔을 그들의 부모. 이는 감정적인 폭발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였으며 그들은 들끓었다. 그 생각을 하니 내 손가락 끝이 막 뜨거워 지더라. 나는 과연 들끓을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하니 다른 이유로 마음 속이 들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절로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미인들의 저항 운동 위치는 대구였는데 나는 며칠 전에도 대구를 다녀왔단 사실에 또 한 번 부끄러워 해를 잃은 해바라기 마냥 고개를 숙였다.
대구 미인들의 민주주의 정신이 깃든 이 운동은 그 후 곳곳에서 일어난 학생 민주주의 운동과 더불어 4.19 혁명의 시발점이 였으며 그렇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횃불을 하나씩 밝혀왔다. 아니, 2월 28일 그들이 횃불을 붙이고 거리에 나설 때 이미 우리의 나라는 불타오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라를 사랑하자.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는 아주 많은 뼛가루와 아주 많은 눈물과 아주 많은 피와 아주 많은 사랑이 묻혀있으니 나라를 사랑하자.
미인들을 생각하다 글을 적는 여름 밤 나는 그들의 용기에 감사의 편지를 부치고 싶었다.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위로의 포옹을 주고 싶었다. 미인들을 생각하다 글을 적는 여름 밤 아마 나는 이 사실을 몰랐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계기를 선택하여 이 일을 알게 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두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다.
여러 감정이 오갔던 오늘,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2.28 민주운동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하고 새겨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들의 반짝임이 꼭 미인들의 속삭임 같았다. 그리고 나는 더 오래 빛나리오, 답장을 적어 보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