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2·28운동으로 가는 길
대구공업고등학교 1학년 장준원
오늘은 그다지도 어둡지 않은 날이라 나는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었다.
“오늘 무슨 요일이에요?”
나는 엄마에게 오늘의 날짜를 물어 봤다. 그러자 엄마
“달력 봐라~~”
나는 봄방학을 처음 시작한 후 처음으로 달력을 보았다.
“어… 2월 28일이네?”
나는 반에 중간 정도 공부하는 녀석이지만 2·28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어제도 친구랑 놀아서 만나기는 좀 껄끄러운데….”
어제도 친구를 만났던 터라 나는 선뜻 친구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다.
“에휴 딴 애랑 놀아야겠다~ 흠~민규랑 놀까나?”
나는 잘 놀지 못한 민규에게 전화를 건다.
“민규야, 뭐하냐? 오늘 놀 수 있냐?”
“아 준원이냐? 나 오늘 2월 28일이라서 할아버지랑 2·28공원간다. 니도 같이갈래?”
하도 심심했던 터라 나는 선뜻 민규를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옷을 갈아입고 민규와 아파트 단지 앞에 모였다. 민규의 할아버지는 정장 차려입은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항상 속옷차림에 부채를 부치고 계셨다. 어찌 됐든 시간을 때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버스를 탔다.
나는 2·28공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내가 알던 2·28공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는 2·28공원의 모습은 텅텅 비고 할아버지 몇 분이서 바둑을 두고 계신 동네 공원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질서 정렬하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의자에 앉았다. 나는 민규와 게임을 애기를 하면서 시끄럽게 애기하고 있을 때 민규의 할아버지와 몇몇 분의 할아버지는 어째서인지 조용했다. 민규와 떠들다보니 행사가 시작했다. 국민의례가 시작하자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나는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서 묵념을 하는데 어째서인지 민규의 할아버지는 우울한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이때만 해도 민규 할아버지가 왜 그러시는지 알지 못했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민규의 할아버지는 노래공연이나 여러 가지 행사는 신경 쓰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니 점심시간이었다.
민규의 할아버지는
“준원아 시간 되면 점심 먹고 안 갈래?”
나는 어차피 집에 가면 게임이나 하고 혼자 심심할 것 같아 밥 먹고 민규 집에서 놀 생각으로 할아버지의 말씀에 승낙했다.
민규의 집은 깨끗하게 치워져있었다.
할아버지는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으시자 “나는 짜장면 먹을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중국집에 전화를 하셔서 비싼 깐풍기까지 시켜주셨다. 민규가 “야~너 우리집은 처음이지?”
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민규 집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민규를 따라서 집안을 구경했다. 둘러보다 보니 다른 문은 다 새 거인데 유독 내가 본 그 문 하나만은 낡고 바꾸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을 가리키며
“여기는 뭐 하는 데냐?”
라고 하니 민규의 할아버지께서는
“왜? 궁금하니?”
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 문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선뜻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문을 열어 주셨다.
문은 세월이 많이 지났는지 중후한 느낌의 “끼익”이라는 소리를 내뱉었다.
할아버지의 방은 책상과 책장이 있고 매트리스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그 방에 들어가자 오래된 책 냄새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바로 코를 부여잡자 할아버지께서
“허~허~냄새가 좀 나지?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을 버릴 수 없어….”
그러자 나의 호기심을 한 번 더 자극시켰다.
“이 녀석이요? 책한테 이 녀석이라고 하시네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왜인지 아니? 이 책들은 나의 휼륭한 기억들과 다신 볼 수 없는 친구가 담겨있거든”
나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무슨 기억이에요?”
라고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알고 싶구나? 좀 길텐데 들어볼텨?”
나는 자신있게
“네!”
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매트리스에 우릴 앉히고는 한숨을 쉰 후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건 학창시절에 이야기란다.”
할아버지는 1960년 그때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셨다.
그 때만해도 6·25전쟁이 끝이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못 살았다. 미군에게 초콜릿을 동냥하는 아이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장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대구고등학교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졌다. 후보자는 2명 장면박사와 이승만이였다. 이때에는 이승만의 장기집권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2·28일에는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친구분들은 장면 박사에 선거연설을 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요일에 학교를 나오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자 나는 할아버지에게
“일요일인데 학교를 가면 뭐라고 하지 않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예끼~어른이 말하고 있는데! 끝나고 물어.”
라고 하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일요일에 학교에 나간 할아버지는 각 반에서도 불만이 마구 터져 나왔다. 선생님들은 반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어떤 녀석이 교탁 앞에 나가서 말했다.
“마~ 니들 그거 아나?”
“뭔데?”
“우리 왜 일요일인데 학교 나온 줄 아냐고.”
“야이 문디 자슥아 어제 선생님께서 말하시는데 잤나? 토끼 잡으러 간다 안 카드나.”
“진짜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왜 뭐 있나?”
그때 반에 분위기는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무엇인가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 친구가
“진짜 이유는 니들 오늘 장면박사님 선거 연설회인지 알제? 그거 못 가게 할라꼬 일요일날 학교오라고 하는 기다!”
“진짜가?”
삽시간에 반은 진짜라는 의견으로 분분해졌다. 그 상황에 그 녀석이
“오늘 11시에 다른 학교 애들하고 모이기로 했다. 다른반 애들은 다 아니깐 니들도 갈 애들은 준비해라 이게 무슨 민주주의고 독재정권과 무엇이 다르냔 말이여?”
그 말을 듣자 할아버지는 가슴 한구석에 뜨거운 것이 타올랐다. 아이들은 시간이 남자 유서와 편지를 쓰는 애들, 선생님의 망을 보는 애들, 시위 물품을 만드는 학생들 등 여러 아이들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준비했다. 이 말이 끝이 나자마자 할아버지는 상자에서 낡은 편지지 한 장을 꺼내주었다. 우리는 편지를 펴자 할아버지의 유서가 담겨 있었다. 그 내용은 말을 할 수 없는 감정이 나의 마음을 쳤다. 나는 그때 할아버지의 고교 생활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그리고 11시가 되자 아이들은
“독재정권을 물리치자, 이게 무슨 민주주의인가?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이런게 아니다! 이승만은 물러가라.”
우리는 구호를 외치면서 교실을 일제히 나섰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짐작으로나마 주도자는 퇴학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도나도 반장들까지도 주도적으로 앞에 나섰다. 선생님들은 우리를 막아섰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짐작하기에는 선생님들도 민주주의의 실천이 옳다고 인정한 것 같다. 어찌 됐든 학생들은 교문을 벗어나서 학생들끼리 만났다. 학생들은 이미 준비한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그러자 경찰들은 벽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두려워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경찰은 학생들을 일제히 무력으로 진압했다. 잡힌 학생들은 얼굴이 피투성이였지만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은 꺼지지 않았다. 도망치는 학생들은 상점가에서 숨겨주었다. 그때 할아버지도 동네 슈퍼 할머니가 자신을 숨겨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다시 모여 진격했다.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다. 진격하고 쫓기고를 반복하면서 할아버지의 친구 분이 잡혀가셨다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움푹 패인 눈가에 눈물이 가득히 고였다. 그리고 먼지가 가득한 상자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친구 분과 할아버지의 사진과 낡은 손목시계가 하나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멈추어버린 손목시계를 보며 이 말씀을 하셨다.
“이 손목시계는 내 친구가 자신이 잡히거든 이 손목시계를 가지고 있다가 꼭 후대에게 보여주어 2·28운동을 잊지 않게해줘 라고 약속을 하고 받은 시계란다. 이 시계는 어떠한 보석보다 귀한 역사가 담겨있단다.”
라고 말씀하시자 나는 진짜 그 순간 머리에 망치가 날아와 세게 친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2·28은 그것만으로 아주 중요한 역사란다. 2·28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많은 귀감을 주었단다.”
“너희들 혹시 4·19민주화운동을 아니?”
나는 수업시간에 강조한 내용이라서 그런지 잘 알고 있었다.
“네 할아버지 4·19민주화운동을 잘 압니다.”
라고 하자 할아버지께서는
“그럼 혹시 2·28민주화운동이 4·19운동의 시발점이라는 것도 알겠구나?”
나는 잘 알지 못했다는 나는 역사를 시험점수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역사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후대들이 이어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희생은 묻히고 말거야 그것을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이 녀석아~ 그리고 준원아 역사는 과목 같은 게 아니야 니 마음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 흘러서 니가 만들어진 거란다. 나는 그것만 니들이 안다면 저승에 가도 나의 친구에게 자랑스러울 것 같단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끝나자 중화요리가 도착했다.
나는 민규와 조용히 밥을 먹고 집으로 바로 떠났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나도 같은 고2인데 할 줄 아는 게 게임에 만화책?
‘에휴 나도 참 한심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나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생각들을 하면서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 가슴 속 한 구석에 있던 마음에 무언가가 타올랐다. 그리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에 맹세했다.
“역사 보존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방학 중에서 가장 보람차고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