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대구광역시장상)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계성고등학교 1학년 엄세빈
지난 5월 4일은, 아쉽지만 그래도 홀가분한 날이었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부담감이 있었던 고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시험 결과를 뒤로 하고, 모처럼 중학교 때 단짝친구 두 명과 함께 동성로를 찾았다.
동전노래방에서 시험 부담감을 훌훌 털어 버리듯이 목청껏 몇 곡을 불러서인지 배가 고파 떡볶이 집에 갔다. 많은 방송에서 소개한 맛 집이었다.
손가락 두 개를 붙여놓은 크기의 굵은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빨갛고 매콤한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납작 만두가 일품이다. 우리도 그 것을 주문해 먹었다.
배를 채운 후, 근처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 캔을 하나씩 들고,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맞은편 작은 공원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에 있을 법한 크기의 작은 공원이었다. 30여분 수다를 떨고 나오다가 ‘2·28 기념 중앙공원’이라는 공원이름이 적혀진 비스듬한 직사각형 비석 앞에 우린 발걸음을 멈춘 후,
“니, 이 공원이름 알았나?”고 우리 중에 누가 물었다.
그냥 고개만 절레 절레.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우린 가족과의 저녁 약속을 이유로 지하철 역 근처에서 헤어졌다.
1호선 전철 안에서 스마트 폰 삼매경에 나도 동참했다.
그냥 포털 사이트에 입력한 ‘2·28’.
많은 연관 검색어가 있었고, 그 중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를 클릭했다. 2·28 민주화 운동의 모든 것이 있었다. 역사 공부도 할 겸 꽤 정독을 한 것 같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영구집권을 꿈꾸며 각종 부정부패를 일삼은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였고, 이를 계기로 3·15마산의거, 4·19혁명으로 이어져 결국 자유당 정권을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대단하고도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약 56년 전의 고등학생들이 부패부정, 독재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 어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것도 대구에서’.
‘당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부족해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다들 먹고 살기 힘들 때였을 텐데, 당시 대통령까지 그만두게 하는 민주화 운동이라니, 그것도 고등학생들이’.
민주화 운동, 애국 운동은 시민단체 등 일부 어른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요즘 우리 또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대학 진학, 그러기 위해선 내신을 잘 받고, 수능대박을 이루는 것, 이것이 나와 또래들의 절대적 과제라는 데 매몰된 현실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민주주의, 애국처럼 뭔가 있어 보이는 엄중한 가치가 아니더라도 주위를 돌아보는, 하다못해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는 그런 여유도 갖지 못한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우리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런 현실을 만든 어른들도 분명 한 몫 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최상이라는, 돈이 제일이라는 물질만능주의’,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잘못도 적지 않다. 나도 그런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당시 등교를 거부하고, 반월당에 집결한 학생들 중 일부는 부모님들에게 꾸지람을 받았겠지만, 당시 대부분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 대구시민들은 경찰에 쫓겨 도피하는 학생들을 숨겨주는 등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대구시민의 시대정신이 있었기에 반독재 민주운동이 성공하지 않았을까?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그 때의 고등학생들은 이제 80세를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그 고귀한 발자취가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분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퇴색되지 않도록 할 사명은 우리에게 주어졌고, 미래에는 나와 같은 청소년이 그 중심에 설 것이다. 잠시나마 그 때의 그분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뭔가를 곰곰이 되짚어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2·28 민주운동 국가기념일 지정, 추진 100만인 서명운동’에 내 이름과 주소 입력을 그 첫 발걸음으로 삼는다. 지난 5월 7일 ‘컬러풀 페스티벌’ 때 다시 찾은 2·28기념 중앙공원, 분수에 비친 화창한 봄 날 햇살이 작은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