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민주주의를 향했던 청년들의 발걸음
강북고등학교 2학년 백천우
하루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거나 축구공을 힘차게 차는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행하게도 개개인마다 자신만의 고민이나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현재의 우리들은 나도 그렇듯이 개개인 또는 단순한 나와 관련된 주변상황 등을 보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주변사람들과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 천진난만하게 살아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우리들과 같은 대구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학생들 중에 우리와 관련된 상황들과 행복들은 제치면서 그것에 훨씬 더 나아가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모습을 보인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외침은 대한민국 건국아래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개혁을 요구했던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민주주의의 새싹을 심었던 소리였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학생들의 모습과 배경은 실로 어땠을까? 궁금하다면 지금 그 소리들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당시는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3회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2년간 정치공세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 12년 동안에는 각종 비리로 인한 당선이 실로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 그래서인지 계속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1960년 4번째 대통령 선거에서도 자신이 다시 대통령을 해 보려고 잘못된 행동들을 펼쳐갈 계획이었고, 그 행동들 중 일요일에 예정된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일 당일을 방해할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이 바로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에 나가지 못하도록 당국이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등교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학생들은 처음엔 속으로 단순한 불평을 하면서 따르려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낌새가 이상하고 무언가 의도가 있다는 것을 당시의 지식층이었던 고등학생들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 등교의 진정한 의미를 눈치 챈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부속고 등의 학생들은 집회를 결성하고 부당한 일요일 등교의 항의와 함께 밖으로 나가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김수영 시인의 시 “폭포”에 나오는 폭포의 두려움이 없는 저항 정신처럼 학생들은 도청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당당히 시위를 하며 행진을 하였다. 그 시위가 있는 동안 많은 구타와 체포된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학생들은 기죽지 않고 더욱 높은 목소리를 내며 정의의 목소리를 외쳤다.
한편 언론에서는 이 목소리들을 기사에 실어 사람들에게 내놓았다. 기사를 본 사람들도 정의감을 느끼며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3·15부정선거”에서 “4·19혁명”까지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비록 학생들의 시위에서부터 시작됐다 하더라도 이 작은 불꽃이 큰 불꽃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대구에서 일어난 “2·28민주운동”이다.
앞서 말한 “2·28민주운동”은 대단한 의의가 있기에 이를 기념하려고 1961년 “2·28대구학생기념탑”을 명덕로터리에 세웠고, 1990년에 기념탑은 두류공원으로 옮겨졌으며 그것과 더불어 “2·28민주의거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사실 나는 “2·28민주운동”을 올해에 들어 처음 알게 되었고 최초의 민주운동이었다는 사실과 이런 기념 건축물과 공원이 있다는 것도 “2·28민주운동”을 접하기 전엔 몰랐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분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여러분들도 그렇고 또한 더 나아가 대구 시민이라면 민주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떠올리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함은 틀림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 또한 우리나라의 최초의 민주운동이 “4·19혁명”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을 보여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지만 나는 이제 당당히 우리나라의 최초의 민주운동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당히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일어난 2·28대구학생민주운동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올바르게 알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들은 현재 살아가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민주주의의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이 평화를 가져다준 한 줄기의 정의와 열망의 빛을 시작으로 점점 퍼져나가 태양처럼 우리를 비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 누려야 한다. 현재의 학생들은 앞부분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나와 관련된 주변상황들만을 인식하고 지내는 것 같다. 물론 55년 전 민주운동을 일으켰던 학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꿈과 열망을 가지거나 사회의 잘못된 점을 고치려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학생들이나 청년들도 불타는 열정을 품은 가슴을 새기고 나라와 사회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며 고쳐야 할 점 등을 구현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의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작은 시냇물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들이 모여 아름다운 바다로 흘러가듯이, 옛 민주운동이 그랬듯 깨끗한 정신들 하나하나가 모이면서 아름다운 사회를 가꾸어 나갈 수 있다고 그들에게 말을 해주고 싶다.
민주주의의 새싹을 심고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점점 키워나가 꽃을 피워 우리에게 선사한 우리들의 조상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바쁜 생활 와중에도 “2·28민주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들과 같은 기념일에는 우리들을 위해 희생한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길 바란다. 우리 자신들도 조상들께 받은 꽃을 잘 보존하고 가꿔서 그 정신을 이어나가 후세들에게 물려주기를 또한 소망한다. 그 동안의 민주주의의 평화를 위해 힘쓴 이들의 노력을 이제 알았다면, 살아가면서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