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대상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반’
강북고등학교 정희도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알고 있고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운동의 ‘시작’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운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4·19 혁명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저조차도 그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운동의 시발점이 된, 다르게 말하면 지금까지 일어났었던 민주운동의 ‘반’이라고 마땅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민주운동이 1960년 2월 28일 자랑스러운 우리 고장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운동이라고 말입니다.
벌써부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2·28 민주운동을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많겠죠. 그럼 2·28 민주운동의 시작부터 낱낱이 파헤쳐봅시다. 아까 말했듯이 이 운동은 1960년 초에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 당시 이승만 자유당의 독재로 우리나라가 비리와 부패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리고 2월 28일, 횡포가 절정에 다다르자 참을 수 없었던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민주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점은 이 민주운동의 주도층이 고등학생이라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네 맞습니다. 저의 또래죠. 하지만 저는 그때의 고등학생들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저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현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평범한 고등학생들 중 한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들 중 한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썩어빠진 나라를 구하겠다고 두 팔 걷고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매일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와 싸우다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을 바꾸는 민주운동가가 되다니,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치, 경제는 뒤로하고 오로지 입시에만 매달리는 고등학생, 남 얘기 같지 않으실 겁니다.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물 밖으로 나갑시다. 비록 우물 밖으로 나감으로써 얻는 위험성이 클지라도, 그 도전정신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혹시 모릅니다. 2·28 민주운동처럼 여러 마리의 개구리들이 모여 큰 업적을 달성할지도 말이죠.
우리는 이토록 위대한 걸음을 디딘 그들을 몰랐던 것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의 민주사회가 있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사건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참 다행입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니까요. 재차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입니다. 영화 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점화하지 않으면 로켓은 발사하지 않는다’ 참 와 닿지 않으신가요? 1960년대 고등학생들이 그저 부패한 현실 이라는 우리 안에서 풀만 뜯어먹고 사는 양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민주사회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달랐습니다. 우리 안에서 열심히 힘을 길러, 온몸으로 우리를 부쉈습니다. 더 넓은 평야, 더 많은 풀,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해서였죠. 그들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그들의 선구자적 행동에 감명 받은 다른 양들이 잇따라 우리를 부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사라지게 되었죠. 시작을 강조한 이유, 조금 더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시작의 중요성을 조금 더 강조하기 위해 그들이 ‘시작’하지 않았으면 일어날 일을 생각해봅시다.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끝나지 않아 현재까지도 이승만의 자손들이 정치계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북한, 심지어는 지난 날 일본의 횡포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시작했어야 할 운동, 그 운동이 1960년에 일어났기에 지금 같은 민주사회에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린 그들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입니다. 사람들은 이 ‘무관심’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 종종 관심이 있다가도 없게 됩니다. 정치에서도 이것은 맞아떨어집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지배당하고 온갖 비리를 봐도 모른척하던 그런 때, 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나섰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개혁하기보다는 윗사람에게 아부하여 자신의 계급을 한 단계 높이는 게 자신의 삶에 더욱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반면에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런 부적절한 사회를 바로잡으려면 누군가가 나서야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데 바쁘다. 내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들의 예상은 옳았습니다. 2·28 민주운동이 있고 난 뒤 뒤따라 4·19 혁명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고, 그 뒤에도 여러 민주운동들이 작게 크게 일어났습니다. 로켓의 점화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가 발전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여 잘 몰랐던 민주주의가 저의 또래였던 고등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큰 뜻이 없는 저에게는 커다란 반성거리가 되었습니다. 시작이 반이지만 우리는 그 반을 모르고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지만 우리는 그 반을 뒤로한 채 나머지 반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시민으로 살며 민주주의의 발전 배경을 모른다는 것은 큰 모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우리 고장 대구에서 일어난 일을 말이죠. 결과만 우리 눈에 보인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작이 있기에 결과도 있는 것입니다. 시작과 결과의 진정한 합일, 우리가 가장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