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민주주의의 뿌리가 내리다
강북고등학교 2학년 권현우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문물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물들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어제오늘에 발생한 일을 보며 그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평가를 합니다. 저녁에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며 노래를 평가하거나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합니다. 이 생각들을 바탕으로 SNS에 글을 올려서 내 생각을 공유하고, 똑같은 생각들을 만납니다. 혹은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는 늘 일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굳은 땅 속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대한민국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가 대한민국이 세워진 후에 바로 뿌리를 내렸을까요? 아닙니다. 1960년, 당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개인의 장기 집권을 위하여 부정 선거와 헌법까지 고치는 수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겉으로 포장된 독재 정치의 썩은 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독재 정치에 아무런 항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독재 정권은 대중들을 억압했습니다. 당시의 언론사는 물론이고 어른들이 그저 이 상황을 수수방관만 할 때, 어둠 속에서 작은 불꽃을 지핀 것은 바로 우리 학생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건국 된 후에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우리 같은 학생들이 주도했다는 것이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2월 27일, 몇몇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일요일에 등교하라는 학교의 지시에서 아직 순진무구한 학생들을 정치 도구로 간주하는 정부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2월 28일, 학생들은 정부의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기 위해서 나중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왔습니다. 이 민주화 운동은 들판에 지른 불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불꽃은 3·15마산의거를 거치고 4·19혁명을 이끌어내었으며, 결국 독재 정권은 무너지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그 끝을 맺었습니다. 학생들이 처음부터 ‘정권을 타도하자’라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이러한 일을 시작 했을까요? 단지 그들은 자유가 억압된 현실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이러한 운동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그 시기의 18살,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내가 그때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고통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저는 아마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거기에 반발하면 주어질 고통과 불이익이 두려워 순응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그 용기 있는 학생들에게 정말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또 다른 어둠 속에 잠겨있습니다.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남들을 도태시키고, 홀로 앞으로 전진하는 이기주의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한 이기주의가 1960년 당시에도 이렇도록 퍼져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기주의의 검은 손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는 행동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마음속에 길이길이 기억될 그 사건. ‘세월호 침몰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선장과 그 승무원들이 자신들이 먼저 구조되기 위해서 수많은 학생들과 승객들을 저버리고 구조선에 올라타지 않았다면, 그리고 자신들보다 승객들을 구조시키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여 승객들 전체가 구조되었더라면, 우리는 이 사건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회 전체에서 이슈가 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기주의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역시 사회를 멍들이고 있습니다. 소위 ‘땅콩 회항’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도 발생한 소위 ‘갑질’로 불리는 이 행위는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그저 이것을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행동을 멈추기 위해서 2·28학생의거와 같은 운동을 펼친다면 독재 정권이 무너진 것처럼 내부 사회의 악이 뿌리 뽑히지 않을까요?
2·28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일이 최근에 하나 일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에 작은 대자보가 하나 붙었습니다. 2013년 12월에 시작되어 지금은 유명한 사회 운동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안녕들 하십니까?’입니다. 당시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사람들은 모두 직장에서 직위가 해제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을 ‘2·28학생의거’에 대입시켜보면 어떨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 한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는 2·28의 고등학생들의 운동이 다른 고등학교에 퍼진 것처럼 서울권 및 수도권 대학교부터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보며 특히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 학교를 뛰쳐나간 것부터 대자보를 붙이는 등 처음에 한 행동은 아마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시작은 곧 큰 변화의 바람을 불어왔습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은 그 자체로도 값진 성과입니다. 만약 그때 학생들이 일요일에 고분고분하게 등교하며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들판에 불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3·15마산의거부터 시작해서 4·19혁명 같은 민주화운동이 늦춰졌을 것이고 그 사이에 대한민국은 제 2의 일제강점기를 맞이하여 아마도 지금까지 그 여파가 남아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시작을 이끈 학생들에 합류한 주민들, 끝을 이루기 위해서 합류한 시민들.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우리는 지금 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민주화의 꽃이 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먼저 북한이 떠올랐습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주화운동이 꽃을 피우지 못했고, 나라 이름에 '민주'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인 독재 정치를 행하고 있습니다. 혹은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의 상황처럼 ‘빅 브라더’에게 자유와 사상이 통제당하며 끝없이 감시당하는 소위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뿌리내린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으니 이것이 다시 독재로 얼룩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유지의 방법은 바로 투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마땅히 행하지 않으면 독재 정권이라는 나쁜 농부에게 순응하는 사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뽑아봐야 그놈이 그놈인데 뭘 뽑아. 집에서 잠이나 자야지.’ 하는 생각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옛날, 투표권을 달라는 여성들은 감옥에 갔고, 신분 해방을 외치는 노예들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으며, 독립을 외치는 투사들은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당장의 실현을 위해서 목소리를 부르짖었습니까? 아니면 작은 희망을 놓지 않고 그 희망을 키우려고 노력했습니까? 당장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여 현실에 안주하고 그 상황에 만족한다면 지금은 당연시된 이야기들이 과연 그대로 전해져 왔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정말 쓸모없고 시간을 버리는 짓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내 작은 투표 하나가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작은 한 표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자기의 일요일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을 보고, 그리고 정부의 사악한 의도를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민주주의의 색깔이 바래지 않도록 노력하고 그 색이 더 짙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노력을 잊으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점점 더 땅 속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민주주의의 나무를 절대로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우리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고 후배에게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전해줘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