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자랑스러운 내 고향, 대구
대구시지초등학교 5-1 김건형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2.28민주화 운동 글짓기 공모계획을 듣고 2.28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여러 가지 자료를 읽어보다가 지난 4학년 사회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1950년 6.25전쟁이 끝난 직후,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지면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대결하게 되었고 또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저항이 있었던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하셨다.
인류가 발전하고 한 나라의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는데, 그 첫째가 사상의 발전이고 둘째가 경제발전이고 세 번째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란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산업혁명이 있었고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이 두 가지를 잘 치른 나라는 선진국이 되고 성공하는 나라가 될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를 잘못 이룬 나라들은 후진국이 되고 못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 세계 역사와 같이 두 번의 과정을 그치며 성공시대를 열었는데 그 첫째가 경제개발이고 두 번째가 자유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정말 가난한 나라에서 좋은 경제정책과 새마을 운동이라는 정신적인 개혁으로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었고, 민주화 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여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초석이 되는 것이 바로 대구 2.28민주화 운동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4.19 학생의거로 민중 민주운동의 시작점이 되었고 독재정권을 막고 민주주로 우리나라를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2.28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주 역사에서 그 의의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대구는 전통적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도시이며 나는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구는 일제시대에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1907년에 시작된 국채 보상운동을 처음으로 전개한 곳이기 때문이다. 대구에는 새해가 되면 국채보상 공원에서 타종식을 항상 하기 때문에 나도 어머니와 함께 국채보상공원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이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곤 했다. 국채보상 운동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한 후 우리나라에 차관을 얻도록 강요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1907년 2월 서상돈 등 16명의 열사들이 대구에서 국채 보상운동회를 조직해 이 빚을 갚자며 경제자립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다양한 계층이 금주, 금연운동을 하거나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 성금을 모았던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통감부와 친일파가 지휘하던 매국단체 일진회를 이용해 운동을 방해하고, 국채보상운동회 대표를 구속하는 등 심하게 탄압했다. 그래서 비록 이 운동이 좌절되었지만, 국채 보상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운동이었고 이러한 운동이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그뿐 아니라 6.25당시에 북한의 김일성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한을 침공할 때 순식간에 남한의 대부분의 땅이 북한군에게 점령 당했으나 마지막까지 가장 오래도록 점령당하지 않고 적군의 남하를 막았던 곳이 대구의 북쪽지역인 낙동강 전투이다. 낙동강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막아 자칫하면 북한의 손에 넘어갈 한 우리나라를 구한 곳도 대구이다. 낙동강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구의 학도병들은 목숨을 걸고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지켜 전쟁의 승리를 이끄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 마을 뒷산 천을산에 올라가면 낙동강 전투에서 나라를 지키다 죽어간 학도병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나는 가족과 함께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그 분들의 이름을 읽어보며 나라를 위해 죽어갔던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다부동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갔을 때도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우리 대구는 이 글의 주제인 2.28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독재를 하는 정부의 부정부패와 부정선거로 정권을 잡으려던 이승만 정권과 경찰들의 협박에 맞서 싸웠다. 정부가 민주당 장면 후보의 강연 참석을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 명령을 내리자 당시 대구 고교생 1천 200여명이 대규모 시위로 항거한 운동이다.
그 항거는 결국 4.19의 도화선이 되었고 마침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우리나라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그때 2.28 민주화 운동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유명한 링컨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2.28운동이야 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고장에서 태어난 나도 그분들의 정신을 본받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 발전시키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