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그날의 함성소리
강동고등학교 1-3 김소정
“깔깔깔”
“킥킥킥”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장소가 학교 안이든, 아니면 버스 정류장이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길거리이든 상관없다. 우리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웃음소리가 따라다닌다.
‘말똥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 나이’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학교생활이 공부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득 차있다 하더라도,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있다 하더라도, 즐거움을 찾고 재미있는 화젯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우리 청소년들이다. 이렇듯 우리들이 모여 있는 곳은 언제나 듣기 좋은 웃음소리는 과거에도 우리 청소년들과 함께 존재해왔고, 지금 현재도 존재하고 있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존재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겨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학교에서, 거리에서 사라진 날이 있었다. 그날은 거리가 온통 학생들로 가득 찼고, 학생들의 힘찬 발걸음과 함성소리만이 대구 시내를 가득 채운 날이 있었다.
‘그 날’이 바로 1960년 2월28일 ‘대구 학생 민주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장면 부통령 후보의 선거유세 참석을 막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등교지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어 발생한 학생의거이다. 정말 이 의거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생들 스스로 현실의 불합리한 독재에 항거한 사건이다.
1960년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휴일임에도 대구시내 모든 초중고교생은 당국의 지시로 등교를 강요당했다. 이는 야당의 건거 유세를 간접적으로 방해하는 한편, 선거연설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차단하는 조치였다. 이에 분노한 대구고, 경북고와 사대부고 학생들은 학교에 집결하여 ‘민주주의를 살리자.’, ‘학원의 자유를 달라.’,‘학생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고 외치며 시내로 행진했다. 이 사건 이후 서울 ,대전 ,수원 ,부산 등으로 학생운동이 잇따라 확산되면서 2.28시위는 4.19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학생들이 간드러지는 웃음대신 피맺힌 함성소리를 택한 죄로 거리에서 쓰러져간 그 사건에 대해 ‘2.28’이란 숫자로 외워야만 하는 역사의 한 대목정도로만 생각하였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 의거를 행한 학생들에 대한 경외심 보다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와, 정말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이러한 생각을 갖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다니. 실천에 옮기는 건 정말 어려운데 이것을 성인도 아닌, 청소년, 학생의 신분으로 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지만
‘지금의 나는 어떨까?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시 ‘아니다.’였다. 난 이때까지 내 목숨, 내 삶을 걸면서까지 간절하고, 중요하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사건이나, 사물, 사람들이 없었다. 어찌 보면 난 그냥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아가는 17살 여학생에 불과하다. 이때까지 내가 살아온 삶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하디 편한 삶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진지하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희생한 분들에 대해서 역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2.28학생 민주운동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나와 같거나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이 당당히 거리에 나섰으니까.
하지만 부끄러워하는 데서 멈추면 이 학생운동을 자세히 알아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학생운동의 정신을 생각하며 항상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데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