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내가 알지 못했던 2.28 그리고 대구
대구진천초등학교 6학년 3반 채 시 원
저녁이 내리는 오후, 학교 공부를 마치고 우린 7살 동생, 초등학교 일학년 사촌동생 두 명 그리고 엄마와 함께 두류공원에 있는 2.28기념탑을 찾았다. 따사로운 저녁 햇살이 우리를 감싸주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선 곳에는 2.28기념탑이 우뚝 곧게 서 있었다. 기념탑을 한 바퀴 돌면서 책을 통해 읽은 그날의 시위를 떠올려 보았다. 어린 동생들은 뛰어놀기 바빴지만 엄마와 나는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뛰어나온 언니 오빠들을 생각하며 그날의 함성을 들어보았다.
어린 동생들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2.28기념탑 앞에서 뛰어 놀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잘못된 방식으로,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공평한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나선 일.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대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학생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기념탑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도, 우리 대구의 빛나는 언니 오빠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하지만 그날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휴일이 아니었다. 나라에서 일요일에도 학교를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고등학생들이 선거 유세장에 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대구에서 언니 오빠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그때의 정치적 상황은 우리나라가 부끄러울 정도로 참담하였다. 부정부패가 해가 갈수록 심해지기 시작했지만 그 상황을 어른들도 아무 것도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우리 대구의 학생들이 2월 28일 오후 1시, 우리나라에게 자유와 정의의 회복을 외친 것이다.
부당한 등교지시를 내린 정부에 대항하기 위하여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결의하였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올 때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하지만 부당함에 대한 분노감과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그때의 언니 오빠들의 마음을 모두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공평한 나라로 바로잡겠다는 순수하고, 마음 여린 언니 오빠들의 굳은 다짐과 의지만은 알 수 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엄마는 늘 우리 4남매에게 말씀하신다. 학교 생활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라고, 그리고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정의의 편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왕따를 당하는 편에 서서 도와주다가 나또한 힘든 상황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다짐을 했다. 옳은 일앞에 자신감을 가지고 대구의 언니오빠들처럼 박차고 일어서리라고. 비록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2.28의 그 물결을 기억하며 힘들어하는 친구를 돕고, 서로 하기싫어하는 일을 내가 먼저 해야겠다고.
대구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서울, 대전, 부산 마산 등 전국의 학생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대담하였다.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외치며 박차고 나와 시위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의 노력에도 나라는 무자비했다. 학생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진압하는 경찰에 의해 약 30여명이 다쳤으며, 경찰은 여학생까지도 30명 포함하여 220명을 강제로 잡아갔다. 하지만 학생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 놓았으며,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했다. 경찰에서는 각 학교 대표 33명을 불러 성명서를 작성하여 발표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경찰의 의견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의 굳은 다짐과 의견은 경찰의 곤봉에 무릎꿇지 않았고, 이승만 정부의 부정과 부패, 독재 앞에서 당당했으며 이후 4.19혁명이 일어나는 데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힘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무섭지 않았을까? 아프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대구의 언니 오빠들이 자랑스럽다.
팔공산이 도시를 두르고, 앞산이 우리 집을 감싸주고, 금호강과 신천이 우리를 빛내주는 대구에 내가 살면서도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단지 덥고 춥다는 이유로 짜증을 부렸는데, 이렇게 자랑스럽고 멋진 역사가 있는지 정말 알지 못했다. 2.28민주운동을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그것도 나의 고장 대구의 빛나는 언니오빠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첫발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었던 대구와 2.28을 알고 난 후의 대구는 분명 달랐다.
‘언니 오빠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묵념을 하고 돌아오는 길, 어린 동생들처럼 내발걸음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