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안타깝고 영광스러웠던 기억의 한 자락,
2.28 민주화운동
와룡고등학교 1학년 5반 안수현
2.28 민주운동이라는 주제를 말 하 기 앞서 올해로 민주운동 53주년을 맞아 대구 중구에 위치한 민주 운동 기념 회관을 개최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지난 과거의 소원들이 53년이 지나 드디어 2.28 민주 운동 기념 회관에 고스란히 녹아들은 것이다. 과거에는 부당한 일들로 시위를 하고 연령별대로 시위참여도가 다양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이유든 어느 시위에 있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땅한 중립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로 시위하면 2008년도 광우병 촛불 시위가 연상된다. 민주적으로 거듭날수록 서로 의견차가 심해지고 갈등도 더욱 고립 되어가는 사회가 되어간다. 하지만 2.28운동에 있던 그 즈음에는 실로 쉽게 시위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표출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정부의 억압과 통제가 심했던 시기이기에 진실을 진실로 표명하지 못한 채 묵묵히 견뎌내야 했던 역사가 있었으니,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시발점이 오늘 말할 2.28 민주 운동이 되겠다. 민주적 저항운동의 시작인 2.28 운동을 알리고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지만 더 큰 원인은 더 빨라 져 가고 바쁘기 만한 이 복잡한 사회에서 그 만큼 사라져가는 역사의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내가 쓴 이 글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이 나라를 빛내게 될 많은 어린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2.28 민주 운동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대구’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이 운동이 훗날 4.19 혁명으로 번지게 되어 온 국민을 들고 일어나게 했던 그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민주 운동은 이승만 자유당의 독재정권의 횡포와 부패가 심히 절정을 달하고 국민들의 생활은 그만큼 핍박해져 가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강렬한 문구를 앞세워 학생, 부녀자, 직장인 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을 지켜야하지만 이 당시 정권의 힘 앞에 무너진 경찰에 맞서 싸워야 했던 안타까운 투쟁이다. 이 때 당시의 상황은, 이승만의 부정 선거가 이뤄지고, 이의 후폭풍에 학생들이 모두 광기 할 것을 예감한 정부에서 이를 막기 위해 일요일에도 불구 하고 학생들을 모두 학교로 집합시켜 여러 이유 등으로 나오게끔 만들었고, 이를 진즉 눈치 챈 대구의 학생들이 더욱 광분했고 급기야 모든 학교를 뛰쳐나와 지금의 경북도청과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 당사, 경북지사 관사 등을 다니며 현실을 낱낱이 고발했다. 여러 신문사와 언론매체들도 독재에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전국 각지에 부끄러운 선거 실태와 2.28 학생민주화 의거운동을 보도함으로써 타 지역 학생들도 시위를 시작하면서 차차 정권에서도 작은 흔들림이 보이고 그것이 위에서 말했듯 4.19혁명뿐 아니라 연이은 3.15마산의거, 4.26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서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우린 ‘아 그땐 그런 일이 있었 구나’ 하며 그 때의 상황을 전해 듣지만 많은 학생 운동가들이 죽고 고문당했으며 아직은 어린 소년 소녀들도, 번듯한 가정이 있던 가장, 부녀자들도 이 운동으로 생을 마감한 자가 많다는 사실을 대구에 있는 ‘2.28공원’을 통해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에 맞서 싸운 것이 고작 내 나이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대다수 이었다는 점이다. 정부의 독재에 눌려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움츠려 있던 그 시대에 먼저 나서서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 했던 것은 자랑스러운 고등학생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깊은 감명과 감사와 뿌듯함 그리고 대견스러움 등의 혼란스런 내 마음을 감출 수 가 없다. 주위를 살펴보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고 그 예로 부모님의 심부름조차하기 싫어하는 아이들로 가득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오로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 직업의 선택에 있어서 조금 힘들어 보이는 직업들은 모두 제쳐두고 소위 ‘사’자 돌림 직업 선택 율이 높아만 가고 있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가깝게 우리 고등학생들 에겐 매일 매 순간이 직업의 선택 관련 길 로에 놓여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린 각자의 목표와 진로에 맞춰 삶을 살아가지만 그 때 당시에는 이런 자신의 목표를 나라를 위해 바친다는 것은 조금은 힘들고 고된 길이 아니였을 까 짐작해 본다. 그들에게서 또 한 가지 꼭 본받고 싶은 점은 ‘적극적 참여’였다는 것이다. 쉽게 우리 반에서도 반 친구들을 잘 유도하면서 잘 어울려 지내는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들이 눈에 잘 띄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학기가 새로 시작하거나, 새 학년이 되면 그런 친구들이 유독 부럽고, 닮고 싶기 마련인데 그 당시엔 모두가 한마음으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서 다시 한 번 찡한 감동이 밀려온다. 자기 자신 한명이 나서서 열심히 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힘을 합쳐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띄고 삶에 임하는 것은 그 때도 지금도 자신의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2.28 민주 운동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도 나에게 있어 가장 뜻 깊은 것은 이 모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기 만한 이 운동이 내가 사는 ‘대구’로부터 이뤄졌다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뚜렷한 그들의 판단력과 이성적인 실천력으로 2.28운동의 과정에 있어 많은 공을 세운 대구 학생 모두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고 본보기가 된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설레게 만든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운동들은 모두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아픈 상처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드는 발판이라 생각된다. 간단하게 ‘아 이런 일이 있었지’라는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했던 적이 있었구나.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더 깨끗한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지’라고 마음도 생각도 커지는 사회인들,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번 해부터 새로운 집권에 모두 부푼 가슴을 안고 살아가지만 다음에 있을 선거나 각종 사사로운 선거들 까지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긴 날이다. 처음부터 이런 자세한 일들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한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대구에서만 시작했다는 점에서 2.28운동이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민주화’가 활성화 된 것도, 공동체 의식을 확립시킨 곳도, 모두 내가 숨 쉬고 있는 맑은 공기, 맑은 정신의 대구에서부터 이뤄졌다는 것이 다시금 나를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