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대한민국에 새겨진 민주화, 그 아름다운 흉터
대구 경일여자고등학교 1학년1반 홍민지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은 물리친 이순신 장군,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 귀주대첩을 큰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 이 모든 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큰 공을 세운 위인, 즉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으신 분들이다. 이런 위대한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을 민주화라는 꽃으로 장식해 준 분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내 고장 대구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다.
1960년 2월 시내의 거리와 2011년 2월 시내의 거리를 상상해보자. 별반 다를 게 없다. 둘 다 똑같이 '시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어른들, 많은 학생들이 북적북적 거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11년의 거리가 좀 더 발전되었다는 것이 다르다. 과연 그게 '다른 점'의 끝일까? 아니다. 1960년 2월 시내의 거리가 좀 더 열정으로 넘치고, 함성으로 넘치고, 생동감으로 넘친다. 2011년의 거리는 많이 발전된 거리이지만 1960년의 거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독재'. 이것이 바로 사건의 발단이다. 이승만 자유당은 모든 정권을 자신들의 손에 움켜쥐고서는 놓으려 하질 않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 지경이다 보니 인권유린은 극에 달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이런 지도자를 국민들이 좋아할 리 없다. 이승만의 집권기가 끝나가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할 무렵, 이승만의 지지율은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이런 민심을 모를 리 없었다. '권력'이라는 것에 눈이 먼 그들은 온갖 부정한 방법을 통해 정권을 연장시키려 했다. 언론과 야당의 탄압은 물론이고 선거날 투표장과 개표장에서 대리투표, 사전투표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악행들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이러한 부정부패에 견디다 못해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고등학생. 언론도 보도를 피하려고 했던 '부정부패'에 고등학생이 반기를 든 것이다. 나와 같은 학년, 많아 봤자 나보다 두 세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우리 대구를 함성으로 채웠다. 부정부패에 반대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그들의 열정으로 가득찼다. 그들의 용기에 힘입어 주위의 어른들, 교사들도 정부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점차 정부의 비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의 '용기'가 주변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지금의 대한민국의 기초 발판이 되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또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부의 정치에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 모든 것들은 결코 '당연하게' 이루어 진 것들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안 많은 고통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난 민주화 운동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신한다.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에게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것이 이루어 졌다는 것.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아 가면 갈수록 더욱 언니, 오빠들의 민주화에 대한 간절함이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또한, 얼마나 힘들게 이루어 낸 것인지, 얼마다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지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렇게 힘들이 일구어 낸 민주화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1960년. 대구의 고등학생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적절한 민주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민주화를 추구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민주화를 너무 지나치게 추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정부의 의견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조금만 다르면 바로 '비판'이 아니라 '비난'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자신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써 충분히 정치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맹목적인 정치 비판은 우리에게, 나아가서는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대한민국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50년 전의 그 때처럼 우리도 지금 우리에게 '적절한 민주화' 그리고 '필요한 민주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민주화를 민주화(花)로 표현하곤 한다. 민주주의의 꽃. 아름다운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과연 그 '꽃'이라는 표현이 민주화에 어울리는 단어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꽃이란 표현을 쓰기에는 민주화라는 것을 이루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희생과 고통 그리고 절망이 있었다. 민주화는 꽃이라기 보다는 흉터가 아닐까? 많은 아픔,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비로소 생겨나는 결과물.
흉터이지만 보기에 전혀 흉하지 않은, 영원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새겨질 '아름다운' 흉터 민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