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자부심[自負心]
대구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6반 오가희
사투리 사용하는구나, 어디서 왔어?
내 말이가? 대구서 왔데이.
아~ 대구? 극서지? 한국지리 시간에 배운 그 분지 말이야?
와 아이라. 다들 대구하면 극서지를 제일 먼저 생각하더라카이. 대구 분지 맞데이.
거기 그런 것 말고 뭐 유명해?
대구 말이가? 말라꼬 물어쌓노. 뭐 별로 볼 거 없데이. 극서지도 이제 아니라 카이.

이제껏 살면서 내 고향 대구에 대해 제일 많이 나누었던 대화이다. 무심해 보이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사실 다른 도시에서 친구가 오면 난처했다.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줄 만한 유명한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고3이 되어서야 바뀌었다. 학교의 교육 과정으로 인해 근현대사를 삼학년에 처음 배우게 되었다. 흥선대원군, 개항기, 독립운동과 일제 강점기, 해방, 대한민국의 성립, 6.25전쟁을 거쳐 이승만 정권부분에 들어가니, 현재의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사건들로 가득했다. 그 시대의 상황을 배우며 지금 우리가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전쟁이후의 끔찍한 상황,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의 부패한 정치. 민주사회란 참 어렵게 이루어졌구나. 절로 드는 생각이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도. 이승만 정권의 후반부로 갈수록 엄청난 일들을 볼 수 있었다. 아래층을 끌어안는 위층이 아닌 아래층을 밟고 짓누르는 위층을 보았다. 위층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듯했고, 권력이 없는 층을 그저 무지한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2.28민주화 운동이, 그러한 시기에, 그것도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주도해서 대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근현대사 시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 한 구석 스멀스멀 먹먹함을 느꼈다. 당연하게 여겼던 민주사회가 학생들의 희생으로써 이뤄진 것이었다. 평소 시내의 2.28공원을 무심하게 지나쳐왔던 나의 모습과,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죽은 대구 학생들과 마산의 김주열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 시기의 고등학생이었더라면, 대구의 학생들처럼 앞장서서 나의 신념과 나라를 위해 싸웠을까. 나의 친구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그들처럼 외칠 수 있었을까. 아마 나라면 앞장서서 민주화를 위해 싸웠을 것이다. 그것이 옳은 일 일 것이라 믿고 있기에. 2.28 학생 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모든 민주화 운동들을 배우며 머리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과서의 글들과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학생들과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열정과 믿음, 부르짖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배우고 느껴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2.28 대구학생 민주화운동은 대구의 자부심, 민주화를 이룩해서 현재는 더욱 발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라는 것이다. 이제라도 깨달은 게 어딘가. 앞으로 대구에 친구가 오면 내 고향 대구의 자부심, 2.28 학생 민주화운동을 자랑스럽게 알려 줄 계획이다. 대구의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역사에 큰 한 획을 그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