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
가슴 뛰는 순간
대구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신지수
오늘 난 무얼 하였는가. 매일같이 내게 되묻는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일상, 아무것도 보람되지 않음을 느끼며 난 매순간 좌절한다. 내 가슴 속에 있던 뜨거운 그 무언가가, 식어버렸음을 느낀다. 이 불씨를 다시 태워보고 싶은데, 꺼져버린 심지에 불을 지피어줄 무언가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내 가슴이 뛰었던 순간이 있다. 어릴 적 난 위인전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져 옴을 느꼈다. 일제에 맞서 목숨을 내던져가며 독립운동을 해내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그들과 같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내겠다, 두 주먹 쥐어가며 다짐하였고, 그 때마다 내 가슴 속에선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꽤 오랫동안 잊혀 졌었던 그 기분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사건이 있다. 사회 수업 시간이었다. 정치라는 따분한 과목을 배우면서 또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야기를 듣게구나 하는 생각에 진저리치고 있는 어느 날, 참고자료로 보게 된 4.19혁명 관련 비디오에서 난 익숙한 이름을 듣게 된다. “대구” 2.28 민주운동, 이 이름 속에는 분명 내가 살고 있는 고장 “대구”가 들어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민주화운동이 어느 이름 없는 작은 운동이 아닌 4.19 혁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불러일으킨 시초와도 같은 운동이란 사실이었다. 2.28학생민주의거는 1960년, 장기집권에 눈이 먼 자유당이, 반대 야당 후보 장면 박사의 유세 연설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요일에도 강제 등교를 요구하며 비민주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이에 반발하여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며 일어난 의거이다. 교문을 박차고 뛰어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상상해보면서 난 그 순간 그들이 가슴속에 품었을 그 뜨거운 무언가를 함께 느꼈다. 가슴속에 불씨를 품고 뛰쳐나왔을 그들. 무엇이 옳고 그른가가 너무나도 분명한데도 침묵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답답했을 것이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직 너무나도 작고 힘없이 느껴지는 그들 스스로의 존재, 그러함에도 그들은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바꾸려 뛰쳐나왔다. 위협적인 경찰들의 방망이질, 감옥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침묵하기를 택하지 않았다. 아직 학생에 불구한 그들이 말이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허리춤에 끼고 함성을 지르며 거리를 뛰어다녔을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이 내달렸던 그 거리에 내가 살고 있다. 그들이 내지른 함성이 일으킨 변화가 오늘날의 정부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런 정부 아래에서 살며, “민주”라는 두 글자의 가치를 너무 쉽게 간과해버리고 있었다. 그 날, 수백 명의 학생들이 가슴 속에 태운 불씨가 차가운 독재의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데워주고 있음을 잊으려 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의에 굶주려 있다. 수없이 많은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진저리 치면서도, 침묵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굳건히 믿으며 우리는 정의를 외치는 일로부터 멀찍이 몸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실천했다. 침묵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안보였지, 먼 훗날의 변화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점이 내 가슴 속 불씨를 꺼트렸던 것 같다. 나서지 않는 것이 정의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내 생각은 그들로부터 가슴 속 불씨를 다시 느끼며 산산조각 나게 된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알아서 흘러가겠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결정인 걸, 생각하며 소극적으로 방관했던 내 모습들이 스쳐지나가며 내 가슴 속 불씨를 짓누르고 있던 답답함을 깨닫는다.
나는 발끝에서 학생들이 교문을 차내며 뛰쳐나오는 순간을 느낀다. 그 가슴 뛰는 순간을, 다시 타오름이 느껴지는 가슴 속 불씨를, 달라지는 내 모습을, 또 사회를 그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