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대상
메마른 싱그러움에 기억의 단비를 - 1960, 그날 -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장은미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있다. 5·18 광주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로, 개봉 당시 어느 단체 아무개의 억압을 받네, 마네 뒷말이 많았지만 결국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고 그와 함께 적지 않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 보는 것을 즐기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먼저 내 손을 잡고 이끄셨던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보았던 화려한 휴가.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 아직까지도 선명한 한 자락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사이에 놓이던 흰 국화꽃, 교복 입은 학생들이 박차던 교문, 교복 입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그 거리, 교복, 교복, 교복.
수백 번을 지나쳤지만 단 한 번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2·28 기념비 속의 ‘학생’이라는 두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을 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흙과 피투성이 교복이 되살아나며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떨림과 사명감을 느꼈다. 지금 당장 내 손과 발로 그들처럼 뛰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발자취를 뒤따르는 일만큼은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글로써 정의된 2·28민주운동은 이렇다. 자유당, 곧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부정과 부패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당시 정권은 이 땅에서 가장 자유롭고 순수해야 할 존재인 학교와 학생마저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켜 버리게 되었다. 국민들의 인식 변화와 선거에서의 패배를 두려워한 자유당은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들에 강제 등교를 지시했고, 학교 당국은 갖은 핑계로 학생들의 등교를 종용했다. 그리고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이를 거부하며 교문 밖으로, 거리로 뛰쳐나왔고 시내를 돌며 자유당 정권의 부정을 규탄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써 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들 또한 추궁을 받았지만 이 일은 전 사회로 퍼져나가 같은 해 4·19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바야흐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이룩하기 위해 국민들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은 약하고, 어리며 무분별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어리석지 않으며 용기 있다. 뛰어난 지식인도, 무장한 군인도 아닌 학생들이 나라를 바꾸기 위한 ‘혁명’에 앞장섰다는 사실에 나는 전율했으며, 그 커다란 혁명의 작은 시작이 바로 이곳, 내가 나고 자란 대구라는 사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최근 몇 년만을 돌아보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작은 ‘혁명’들과 그를 위한 노력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용산 철거민 참사 문제, 4대강 사업 문제 등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촛불을 들었다. 이 중의 절반은 2·28민주운동 때와 비슷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었지만 그 태도와 계기는 그 때와 조금도 비슷한 점이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씁쓸하기만 하다. 진정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자리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의식 있는 청춘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일 뿐, 대부분이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 대기에 호기심에, 혹은 재미로, 혹은 멋있어 보이기 위한 영웅 심리로 영문도 모른 채 달려 나와 촛불을 들고 목청을 높이기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메마른 싱그러움’이다. 그들에게는 ‘이유’와 ‘자각’이 결핍되어 있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모르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이 메마르게 서 있는 거리 위를 뜨거운 가슴으로 달렸을 50년 전 나의 친구들, 오빠·동생들을 생각하면 나부터 귀가 붉어지고 고개는 아래로만 향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위 ‘삐까뻔쩍’하다.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국민들은 바삐 움직이며, 바로 어제의 정보는 퇴물로 취급당할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어가고 잊혀져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가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무엇보다도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피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라는 싱그러운 새싹을, ‘삐까뻔쩍’한 나의 오늘을 위해 모른 척 짓밟고 달려 나가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싱그럽다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싱싱하고 맑은 향기,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뜻이다. 청춘은 그 자체로 싱그러운 것이지만, 과거를 간과하는 청춘은 결코 맑은 내일로 나아갈 수 없다. 메마른 풀꽃에게는 비를 내려야 하듯, 메마른 청춘들은 어제의 기억을 양분 삼아 몸 깊숙이, 기억 깊숙이 심고 내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50년 전, 뜨거웠던 싱그러움들의 함성과 열망을.